쓰는 삶/쓰레드

해군 복무시절 봉사활동에 대해

Roslyn 2026. 6. 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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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복무하면서 좋았던 점은 한달에 한번 2박 3일 외박과 주말 외출을 한번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어.
단 외출의 조건은 봉사활동이었어.
근처에 있는 장애인 복지기관이 있었는데, 주로 지체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지.
4시 30분까지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저녁 8시까지는 밖에서 자유시간을 허락해 줬어.
그래서 다들 외출을 나가고 싶어했고, 나도 거기에 합류했지.
거기엔 대학생도 오고 정치인도 오지만, 그들중에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시간만 떼우면되는 대학생들은 출석만 하고 사라져 버렸고, 정치인들은 사람들 시선이 없는 곳에서는 무례하기 그지 없었지.
한번은 달랑 두명이서 장애인 20여명을 데리고 군항제 때 관광을 시켜줘야 했는데, 20여명을 언덕배기 사찰에 올려놓는 건 정말 미친듯이 힘들었어.
한명한명 업어서 언덕을 올라가 내려놓고 나면, 그 사람들이 탈 휠체어를 또 들고 올라가야 했는데, 그걸 단 2명이서 했어. 

사찰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포즈에 맞춰서 이동시켜 놓으면, 이번엔 저쪽에서 찍는다고 또 한사람 한사람 일일이 들어서 포즈와 각도에 맞춰서 배치해야 했지.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군함 구경시켜준다고 한사람씩 업고 군함 내부를 한바퀴 휙 돌고 나와서는 또 다음 사람 업고 도는데, 그나마 체구가 작은 아이들 차례일 땐 숨이라도 쉴 수 있었지.
그렇게 오후 4시 반까지 그 사람들을 모두 관광시켜주고,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버스 앞에서 화장실에 들렸었어.
아이들 오줌 누는걸 도와주고 다시 휠체어에 태우는데, 한 아이가 내 다리를 꼭 붙잡고 놔주질 않는거야.
그러더니 다른 애들도 와서는 나를 꼭 안더라. 놔줄 마음 없다는 듯이.
사실 관광하는 내내 무뚝뚝해서 그냥 애들 성격이 그런가보다 했거든.
그런데 그애들 눈에 땀 뻘뻘 흘리면서 자기들 업고 나르는 내가 남다르게 보였었나봐.
말은 하지 않는데, 내 다리를 꼭붙잡고 너댓애가 울기 시작하는데, 나도 너무 마음이 짠했어. 

그후로 약 1년 동안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했었어.
안타까운건, 1년 정도 됐을 때 봉사활동 하러 간다고 나간 일부 병사가 딴데로 갔다가 적발이 되면서, 봉사활동 자체가 중단되버렸어.
외출이 중단된 후로, 2박 3일 외박만 가능했기 때문에 그 봉사활동은 더이상 갈 수 없었어.
물론 의지가 있다면 인근에서 숙박해가며 봉사활동을 할 순 있었겠지.
요즘이야 병사들 월급이 하사관보다 많니 적니 하지만, 그땐 내 한달 월급이 2만원 수준이었어. 그 돈으로는 어디서도 숙박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난 그냥 이만큼 하면 됐다하고 타협했어.
하지만 분명히, 그때 했던 봉사활동은 내 기억에 깊이 각인된 일중에 하나였어.
지금도 가끔 울던 그 아이들 모습이 떠오를때가 있어. 벌써 거의 30년이 다되가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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