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시중의 수많은 창작 보조 AI 도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광고 문구들은 저마다 화려하더군요.
“단 3초 만에 소설 한 편 완성”, “클릭 한 번으로 베스트셀러 시놉시스 생성.”
그 기술들의 영리함과 속도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묘한 서늘함과 질문이 남았습니다.
‘정말 자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원한 게, 겨우 키보드에서 손을 떼는 일이었을까?’
현대의 기술 공급자들은 작가의 막막함을 해결해 주겠다며 ‘인간을 대신해 주는 자동화’를 미덕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에서 이 방식은 치명적인 결함을 만들어냅니다.
AI가 뚝딱 만들어낸 매끄럽고 완벽한 문장을 마주할 때, 작가가 느끼는 감정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대개 이질감과 허무함입니다.
내 생각의 줄기에서 뻗어 나오지 않은 문장은 아무리 훌륭해도 ‘내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들을 위한 UI/UX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저는 AI 시대의 창작 도구가 전면에 내세워야 할 가치는 자동 생성(Generation)이 아니라 이어 쓰기(Continuation)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1. '생성' 중심 UI가 작가의 주체성을 해치는 방식
많은 AI 에디터들이 채택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용자 경험(UX)은 다음과 같습니다. [키워드 입력] -> [생성 버튼 클릭] -> [수초 간의 로딩] -> [수백 자의 본문 완성].
이 매끄러운 흐름 속에서 작가의 역할은 ‘글을 쓰는 사람’에서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토하고 골라내는 ‘감수자’나 ‘편집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심리학적으로 창작은 단순히 문자를 화면에 나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쓰며 내면의 세계를 구체화하는 인지적 리듬의 과정입니다. 이 리듬을 기술이 통째로 가로채 가 버리면, 작가는 창작의 핵심적인 기쁨인 '내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는 주체성을 잃어버립니다.
기술이 지나치게 친절하여 인간의 고민을 완전히 삭제할 때, 창작자는 오히려 소외감을 느낍니다.
2. 주인공은 기술이 아니라 작가의 '리듬'이다
진정으로 작가를 위하는 기술이라면, AI의 놀라운 연산 능력을 자랑하는 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철저하게 작가 옆에 놓인 ‘작은 작업대’의 역할을 자처해야 합니다.
작가가 글을 쓰다 멈추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완전히 고갈되어서라기보다, 머릿속에 떠오른 파편들을 다음 문장으로 연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해서일 때가 많습니다. 이때 필요한 인터페이스는 완성된 소설의 한 장(Chapter)을 던져주는 것이 아닙니다.
- “이 인물은 지금 왜 화가 났을까요?”
- “앞서 언급한 그 오래된 열쇠를 여기서 활용해 보면 어떨까요?”
- “이야기가 막혔다면, 인물의 시선을 주변 사물로 잠시 돌려보는 건 어떨까요?”
이처럼 작가의 생각을 툭 건드려, 다시 스스로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게 돕는 ‘조율된 디자인적 마찰(Design Friction)’이 필요합니다. 시스템은 대단한 정답을 내놓는 AI 작가가 아니라, 멈춰버린 인간 작가의 생각이 다시 구르고 흘러가게 만드는 보조 장치여야 합니다.
3. 내가 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작은 작업대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롭고 쉽게 멈추는 일입니다. 저 역시 글을 쓰고 싶어 치열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있기에, 첫 문장을 떼지 못해 하얀 화면만 응시할 때의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쓰기 위해, 그리고 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작은 도구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기술을 앞세워 창작 생태계를 혁신하겠다는 거창한 포부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기술이 인간의 자리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이 시대에, 글을 쓰려는 사람이 오롯이 자기 생각에 집중하고 다시 자기 문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조용한 작업 공간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앞으로 이곳에는 화려한 신기술의 나열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술의 홍수 속에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고 ‘오래, 그리고 계속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소박한 고민과 UI/UX적 시도들을 차분히 쌓아가려 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직 아닐지라도, 글을 향한 마음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