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디버깅하는 개발자.

개발과 창작 사이에서, 사람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도구와 기록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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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92

첫 직장의 경험

처음다닌 회사는 자기주도학습 교육프랜차이즈 본사였어. 자체적인 교육웹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팀을 구성했고, 디자이너가 팀장이었지. 일주일에 두세번 퇴근해야했고, 토,일에도 회사에서 살아야할 만큼 빡세게 일해야 했지. 큰 돈은 아니지만, 그렇저렇 먹고살정도의 돈을 벌고 있던 회사였고, 직원수는 한 25명 정도 됐던 거 같아. 대부분이 여자 선생님들이어서, 남자가 몇명 없는 여초회사였지만, 흔히 말하는 여초회사의 문제점 같은 거 없이 모두 정말 친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 그래서 정말 좋은 경험으로 기억에 남는 회사였지. 대표님도 좋은 분이셔서 다정다감했지만, 그런 회사에 변화를 몰고온 건, 어느 임원이 새로 오면서 였어. 이제와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사기꾼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그런걸 알..

해군 복무시절 봉사활동에 대해

해군복무하면서 좋았던 점은 한달에 한번 2박 3일 외박과 주말 외출을 한번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어. 단 외출의 조건은 봉사활동이었어. 근처에 있는 장애인 복지기관이 있었는데, 주로 지체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지. 4시 30분까지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저녁 8시까지는 밖에서 자유시간을 허락해 줬어. 그래서 다들 외출을 나가고 싶어했고, 나도 거기에 합류했지. 거기엔 대학생도 오고 정치인도 오지만, 그들중에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시간만 떼우면되는 대학생들은 출석만 하고 사라져 버렸고, 정치인들은 사람들 시선이 없는 곳에서는 무례하기 그지 없었지. 한번은 달랑 두명이서 장애인 20여명을 데리고 군항제 때 관광을 시켜줘야 했는데, 20여명을 언덕배기 사찰에 올..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들

처음 했던 알바는 세차장 옆 도색장에서 차량 도색을 하는 거였어. 차량에 페인트가 묻으면 안되는 영역에 종이테이프를 바르면 도색을 시작하고, 도색이 끝나면 다시 테이프를 뜯어내는게 일이었어. 그 과정에서 손에 묻지 말라고, 위생장갑위에 목장갑, 그위에 두꺼운 고무장갑까지 끼고, 두툼한 마스크까지 쓰지. 하지만 하루 일과를 끝내고 코를 풀면 코에서 페인트가 나오고, 손에 묻는 페인트는 비누칠로는 벗겨지지 않아서, 아주 약한 신나로 씻었었어. 신나를 손에 부을때,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그럼 아무리 문질러도 안벗겨지던 페인트가 금새 씻겨나가. 그거 하루이틀 하면, 손에 지문이 다 사라져 버리거든? 일주일 했더니, 이거 더 했다가는 내가 무슨 병이 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DVD방을 아시나요

예전에 dvd방이란게 있었어. 제2에 비디오방을 꿈꾸던 프랜차이즈인데, 거기에 멤버십 제공하는 회사를 다녔지. 현장을 다닐 일이 많아서 다음 카페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훗날 그 카페가 회원수 20만을 넘기며 명실공히 dvd방 점주들의 필수가입 커뮤니티가 됐지. 회사가 번창하고 대표는 나를 대우해 주겠다 약속했지만 새로 오는 사람마다 나보다 직급이 높았어. 난 항상 막내였지. 이해는 해. 그땐 내가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꿈을 찾아가야겠다 결심하게 됐고. 그 회사를 나왔지. 이후로도 대표님이 종종 연락하며 내가 만든 카페덕에 유지하고 있다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었어. 하지만 카페를 보니 전형적인 카페로 변질되어가는게 보이더라고. 이후 dvd방의 몰락과 함께 회사의 수명도 다했지만. ..

그 시절 했던 게임에 대해

옛날에 리니지2란 게임을 했었다. 당시 내 친구들은 같이 리니지2를 즐기다가 와우가 나오자 와우로 갈아탔다. 나도 첨엔 같이 와우로 넘어갔지만, 이내 다시 리니지2로 돌아오고 말았다. 내가 와우를 포기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 게임은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자기 역할을 확실하게 해내야 하는 게임이었다. 반면 리니지2는 잘 못해도 어느정도 묻어가는게 가능했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사냥터, 고만고만한 레이드에 적당히 묻어가며 웃고 떠들며 게임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 당시 사회생활을 좀 빡시게 했다. 그래서 게임마저 열과 성을 다해, 뭔가를 학습하고 잘해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좀 못하면 어때?" "게임에 왜 목숨 걸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것 같으..

세대차이

세대차이야 어느나라에나 있다지만 한국은 결이 다르다.지금의 세대는 선진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젊어서 중진국에 살았고, 아버지 세대는 개발도상국에 살았고, 할아버지 세대는 후진국에 살았다.너무 가파른 성장이 세대간 관점과 입장을 너무나도 다르게 바꿔 놓았으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할 수 밖에...내가 20살이던 시절엔 일본 "아이와"란 카세트플레이어가 인기였고, 삼성이나 LG는 고장 안나는 탱크란 소릴 들었다. 기술은 항상 일본이 최고였지.컴퓨터 조립 좀 해본 사람이면 그 시절 대만 브랜드의 위상을 알것이다.당연히 메인보드며 메모리며 주요 부품들은 전부 대만 회사들 꺼였다.시대의 변화는 가치관마저 바꿔놓고 있다.우리시대엔 "성실"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었지만, 요즘 시대는 "개근거지"라며 놀림의 대상..

[애매한 개발자의 창작 기록 5]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그래서 다시 예전 기억을 꺼냈고, 출판을 해봤던 경험도 돌아봤고, 글을 쓰기 위해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한 가지 사실 앞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그럼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어쩌면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할 질문입니다.하지만 저는 이 질문을 꽤 오래 피했던 것 같습니다.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무엇을 쓰고 싶은지 선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웹소설을 쓰고 싶다, 판타지를 좋아한다, 내가 만든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언젠가는 작가로 살고 싶다. 그런 말들은 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장르를 정하는 것과,내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1. 처음에는 장르가 답인 줄 알았습니다예..

[애매한 개발자의 창작 기록 4] AI보다 먼저 필요한 건 쓰는 습관이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처음 이유는 단순했습니다.이야기를 오래 쓰다 보면 제가 만든 설정도 희미해졌고, 네이버 카페에서 본문과 설정 게시판을 오가며 글을 쓰는 일이 불편했습니다.그래서 본문을 쓰는 화면 옆에서 언제든 설정을 볼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글을 쓰는 흐름을 끊지 않고, 제가 정해둔 인물과 세계관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그것이 메리톡톡을 만들기 시작한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그러다 AI가 등장했고, 한때는 AI가 초안을 써주거나 리뷰를 해주면 창작의 막막함이 꽤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기능을 붙여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서비스를 만들고, 기능을 붙이고, 다시 사용해보면서 조금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도구는 점점 생기고 있는..

[애매한 개발자의 창작 기록 3] 글을 쓰려고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려고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글을 쓰고 싶으면 그냥 글을 쓰면 됩니다.노트북을 열고, 문서 프로그램을 켜고, 빈 화면에 문장을 적으면 됩니다.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이야기를 오래 쓰다 보니, 글쓰기에는 본문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등장인물이 있고, 설정이 있고, 세계관이 있고, 이전에 정해둔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않습니다.분명 내가 만든 설정인데도 기억이 흐려집니다.이 인물이 몇 살이었는지.이 장소의 이름을 뭐라고 정했는지.이전에 어떤 규칙을 만들어두었는지.어떤 사건이 몇 화쯤에서 나왔는지.내가 만든 이야기인데도,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헷갈리는 순간이 생깁니..

[애매한 개발자의 창작 기록 2] 출판을 해봤지만 작가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작가세요?”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저는 아직도 바로 대답하지 못합니다.“아, 그냥…… 취미로 글을 조금 쓰고 있습니다.”대부분은 이 정도 대답에서 멈춥니다.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아직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고 있지 않고, 지금도 대부분 취미와 실험의 영역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다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한 번 온라인 출판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웹소설을 연재했고, 작가 데뷔라는 이름이 붙은 경험도 있었고, 일부 회차가 유료 콘텐츠로 전환된 적도 있습니다.형식만 놓고 보면 “작가”라는 말을 아주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그런데도 저는 아직 그 말을 쉽게 쓰지 못합니다.작가라는 단어가 제게는 아직 조금 큽니다.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합니다.출판을 해봤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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