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정말 추워졌습니다. 이제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금새 손이 시려워져서 얼른 다시 주머니속에 넣기 바쁩니다. 서해안쪽에는 눈이 온다고 하네요. 이제 곧 여기도 눈이 올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잘 지내셨어요? 인생잡담, 오늘은 커피 자판기에 얽힌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지금 제 와이프랑 연애하던 진짜 초창기 시절 이야기예요. 그때 저희 둘 다 20대 후반이었는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던 시절이었죠.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퇴근길에 만나서, 버스를 타고 가야할 길을 일부러 같이 걸어가곤 했었죠.
피곤할 텐데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항상 저랑 같이 그 길을 걸어줬던 제 아내는, 특히 이렇게 추운 날이면 홈플러스 앞에 있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멈춰 서곤 했어요. 그때는 뭐랄까… 그 믹스 커피 한 잔이 그 시절 저희 낭만을 대신하는 것 같았어요.
믹스커피 특유에 달콤한 향기와 따듯한 온기가 시린 손을 녹여줬던 것 같습니다.
연애할 돈이 진짜 없어서, 사회 초년생 때 진짜 큰 맘 먹고 샀던 카메라, 오디오, MP3 같은 거… 돈 될 만한 건 닥치는 대로 중고로 팔아서 겨우 겨우 푼돈 만들어서 데이트 비용으로 쓰곤 했었죠. 하루가 멀다 하고 퇴근하면 그녀 만나러 쌩하니 달려가고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1년 365일 중에 거의 350일을 만났더라고요.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 주말에 쓸 돈도 늘 빠듯했기에, 그럴싸한 분위기 좋은 커피숍 같은 데는 자주 갈 수가 없었죠. 근데 아내는 항상 그 커피 자판기에서 뽑은 믹스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녹이면서 저랑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한번쯤은 다른 거 사달라고 할 법도 한데, 고맙게도 항상 그 커피 자판기 하나면 충분하다고 그랬었죠.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고맙기도 했던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고, 저는 다시 저희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곤 했어요. 다행히 서로 집이 그리 멀지 않았기에, 금방 집에 갈 수 있긴 했지만, 그때마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진짜 안 떨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직장에서 같이 밥 먹거나, 회식하고 나올 때면 거의 모든 식당에 믹스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 자판기가 꼭 있었잖아요. 요즘도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만큼 흔하게 찾아보기는 힘들어졌죠. 대신 믹스 커피가 아니라, 원두 커피 머신을 가져다 놓은 곳도 있고, 커피 대신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비치해 놓은 곳도 많아져서, 그만큼 믹스 커피 자판기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내랑 결혼하고 한참 지나서, 아내랑 걷던 길에 항상 들렀던 그 커피 자판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요.
그 커피 자판기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을 때, 겉으로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짜 많이 아쉬웠어요.
진짜 많은 날들의 추억이 그 자판기 앞에서 맺혀 있었거든요.
지금도 그때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니까… 씁쓸하더라고요.
어느덧 그 아쉬움에 씁쓸해하던 것도 벌써 십여 년 전 이야기네요. 시간은 진짜 쉼 없이 흘러가고,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 가고, 제가 살던 시대에 저와 함께했던 문명들은 이제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밀려서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네요.
CD플레이어, 소형MP3,비디오,DVD, 그리고 커피자판기...
그 커피 자판기는 저에게 단순한 자판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가난했지만 따스했던 젊은 날의 사랑, 아내와 함께 했던 그 숱한 시간의 기억들... 이런 것들이 다 거기에 담겨 있었던 거죠. 지금은 비록 사라졌지만, 제 기억속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어주길 바랄 수 밖에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혹시 여러분에게도 그런 추억이 깃든 물건이나 장소가 있나요?
우리 거기에 깃든 그 시간과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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