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사는 이야기

세대 차이, 김장, 그리고 삶의 기준

Roslyn 2025. 11. 2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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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인생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인생잡담"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는 바로 “[세대 차이, 김장, 그리고 삶의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세대 간의 삶의 기준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저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저희 집은 희한하게 김장철만 되면 묘한 긴장감이 감돌아요. 어머니 손이 어찌나 크신지, 저희 다섯 식구 먹을 김치를 배추 500포기씩 담그셨다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죠. 어머니는 당신 형제자매들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들까지 김치 넉넉히 담가서 나눠줘야 직성이 풀리셨거든요. 마치 큰 행사처럼 여기는 분위기였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도 점점 힘에 부치셨는지, 500포기 하던 김장이 200포기로 줄고, 그다음엔 100포기, 50포기... 그렇게 계속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배추는 꼭 직접 절이셨는데, 그마저도 힘드셨는지 재작년부터는 절인 배추를 사기 시작하셨죠. 예전처럼 여기저기 나눠주는 것도 아니라, 훨씬 수월해졌을 텐데도, 여전히 어머니 마음에는 차지 않으시는 모양이에요.

김장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서 김치 담그는 과정 하나하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눈에 띄면 그때부터 어머니의 불평불만이 시작됩니다. 마치 오래 묵은 댐이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잔소리에 집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흉흉해지죠.

저희 형제들은 이미 수없이 겪어본 터라, 김장철이 다가오면 어머니를 열심히 설득하곤 합니다. “엄마, 그냥 이제 김장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해먹으면 안 될까?” 몇 해 전부터는 어머니도 힘드신 걸 아시는지, 저희 의견에 귀 기울이시는 듯하다가도 막상 김장할 때가 되면 결국 “안되겠다, 내가 해야겠다” 하시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은 김장할 것 같지가 않다!” 하시면서요. 마치 숙명처럼, 김장은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오는 거죠.

저희 형제들은 김장 때만 되면 어머니의 짜증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든 김장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결국 김장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 짐이라도 좀 덜어주자는 생각에 형제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열일하죠.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힘들어하시면서 짜증과 불만을 쏟아내곤 하세요.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요.

돈도 돈이지만,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여서 좋지 않은 분위기가 반복되니, 형제들 마음은 “그럴 바엔 그냥 김장 안 하는 게 낫겠다” 쪽으로 기울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게 또 어머니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죠. 사 먹든 해먹든 각자 알아서 하자는 저희 말에, 어머니는 김치를 사다 먹는 자식들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하세요. 마치 당신의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한 것처럼요.

왜 그럴까요? 저는 사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아마도 그게 어머니의 삶의 기준이겠죠.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 속에서 김장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가족을 위한 헌신이자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의식이었을 겁니다. 그 기준은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거죠.

반면 저희 형제들에게 김장은 하면 힘들기만 하고, 집안 분위기만 안 좋아지는 고된 행사일 뿐입니다. 제사와 함께 가장 하고 싶지 않은 행사 중 하나죠. 가족끼리의 화목이 더 중요하지, 그깟 김장이 뭐라고 가족끼리 얼굴을 붉혀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됩니다. 마치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매년 김장철만 되면 같은 갈등이 반복되는 거죠.

어머니는 당신 몸이 힘들어도 자식들을 위해서 김장하는데, 자식들은 그런 당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시지만, 저희는 사실 어머니가 당신 건강을 더 챙기시길 바랍니다. 김치 같은 거 안 주셔도 된다고, 제발 몸 좀 아끼시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완강하세요. 오히려 안 줘도 된다고 하면 더 삐지시죠.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김치 안 줘도 되니까 김장하지 마세요 하면, 어머니는 며칠 동안 삐져 계십니다. 마치 김치 한 번 거절했다가 부모 자식 간에 의절이라도 할 판이죠. 그만큼 어머니에게 김장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행사입니다.

내년부터는 각자 알아서 하기로 했는데, 이런 약속이 이번만이 아니었던 터라, 이번엔 과연 지켜질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마치 굴레처럼, 내년 김장철에도 같은 갈등이 반복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네요.

문득 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따라 친척 집에 갔을 때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떠나가는 택시를 잡겠다고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불러보지만, 택시는 듣지 못한 듯 그냥 출발해 버립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양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휘파람을 부시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많은 길거리에서 아버지의 그 행동이 어린 나이에도 왠지 창피하게 느껴졌었습니다. 택시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가버렸고, 저는 왜 아버지가 저런 행동을 하셨을까 어린 마음에 눈살을 찌푸렸었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아버지가 나름대로 살면서 익힌 생존 방식이었던 거죠. 당신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택시를 잡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그분들의 삶 속에서 그런 행동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되고 기준이 되었을 겁니다. 단지, 고도로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단 1세대 만으로도 엄청난 교육 양의 차이와 경제적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저는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느껴졌죠.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옳지 않았는지, 옳았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그게 그분들이 살던 삶 속에서는 타당한 행동이라고 여겼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 자식들에게는 달라진 삶의 기준을 그분들에게 강요할 순 없겠죠. 그러니, 사시는 동안에는 최대한 어머니의 기준에 맞춰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덕분인지 몰라도 김장 때를 제외하고는 가족 간에 사이는 좋은 편입니다. 마치 균형을 맞추듯,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죠.

시대는 AI와 함께 또다시 급변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최신 기술 같은 것을 익히며 트렌드하게 살고자 했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보니 젊은 친구들의 무시무시한 스펙이며, 그들의 열정을 보노라면 내가 감히 견주겠노라 나서기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고와 가치관은 아마도 저와는 또 다르겠죠.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거죠.

제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은 또한 더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저는 자식 말 잘 듣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내 고집, 내 지식을 강요하지 않고, 자식들 의견 듣고, 자식들 말 잘 듣는 부모가 되고 싶네요. 마치 빈 캔버스처럼,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그려나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만이 제가 익힌 제 삶의 기준인지 모르겠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제가 "인생잡담"을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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